라인강이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고 있어 교통의 요지로 꼽히는 독일의 쾰른지역은 오래 전 로마인들이 개발한 지역이다. ‘쾰른(Koln)’이라는 이름도 당시 게르마니아 지방 수도 이름인 ‘콜로니아(Colonia)’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에게는 기독교를 탄압한 폭군으로 알려진 네로 황제와 그의 어머니가 태어난 곳이 바로 쾰른이다. 게르만족의 대이동으로 로마군이 후퇴하는 과정에서 제일 마지막까지 저항한 곳이 쾰른이라 이 지역에는 아직도 천 년 전 로마 시대 유물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래서 독일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수도인 베를린보다 쾰른을 선호한다.
쾰른에는 인류 역사상 위대한 유물 중 하나로 꼽히는 쾰른 대성당과 유럽에서 역사가 오래된 대학 중 하나인 쾰른 대학교 등이 있다. 쾰른은 라인 강을 기준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이 중 로마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 구시가지이고, 신시가지는 2차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조성된 곳이다.
1980년대 대규모 실업 사태로 위기를 맞다
2차세계대전으로 쾰른의 도심은 90%가 파괴된다. 쾰른 대성당도 14발의 공중 폭격을 받기는 했지만,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유물 중 하나라는 점을 고려해서인지 연합군의 무차별적인 폭격은 피할 수 있었다. 쾰른 대성당은 1248년 건축가 게르하르트가 공사를 시작한 이후 1880년 157m 높이의 쌍둥이 첨탑을 완공하기까지 무려 632년의 공사 기간이 걸렸다. 현재 쾰른에 새롭게 건설하는 건물들은 쾰른 대성당보다 높게 올라갈 수 없도록 제한되어 있다. 쾰른 대성당 내부에는 동방박사의 유골과 수천 년 역사를 이어온 문화재들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2001년 완공된 쾰른 미디어 타워의 높이가 150m에 그친 것도 쾰른 대성당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문화재보다 빌딩 높이로 세계와 경쟁하는 반면, 유럽은 문화재가 그 어떤 도시 발전 계획보다 우선시되고 있다는 것은 부럽기 그지없다.
포도주와 향수 ‘오데콜롱’의 고장이던 쾰른이 미디어 도시로 탈바꿈하게 된 계기는 1980년대 유럽에 닥친 불황 때문이다. 쾰른의 주요 산업은 포도주, 섬유, 향수인데 이것으로 쾰른에 닥친 대규모 실업사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했다. 1985년 쾰른 시는 대안으로 오랫동안 독일 출판업의 중심지였다는 지역의 역사적 특성을 현대적으로 살리기로 결정한다. EU 통합에 대비해 쾰른의 산업구조를 재편하면서 미디어산업과 텔레매틱스산업 활성화를 위해 미디어 특화도시로 조성한 것이다. 이를 위해 시에 흩어져 있는 정보통신사업을 한 곳에 모아 독일형 실리콘밸리를 육성하기로 한다.
슬럼화 지역을 신도심으로
쾰른 시정부는 버려진 화물터미널 부지를 매입한 후 이곳을 쾰른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지역으로 탈바꿈시킨다. 미디어 파크 프로젝트 기획 과정에서 시공무원과 시의회가 지역 개발 전문가들과 함께 참여했고, 기본적인 도시 설계와 운영 조직의 설계를 쾰른시가 직접 담당했다. 미디어 파크의 개발과 운영을 담당하고 있는 미디어파크쾰른유한회사는 쾰른시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가 각각 25.1%를 출자했고, 나머지는 민간 부문이 출자했다.
쾰른 미디어 파크는 독자적인 전원형 신도시로 계획했다. 20만 ㎡ 규모로 조성된 이 지역에는 멀티플렉스 영화관, 레스토랑, 총 250호의 주택, 독자적인 변전소가 갖춰져 있다. 쾰른 미디어 파크에는 미디어와 정보통신 분야의 140여 기업과 3,000여 명의 종사자들이 입주해 있다. 전체 입주 공간 중 미디어산업이 약 26%, IT산업이 약 21%, 예술문화산업이 약 6%를 차지하고 있다.
쾰른 미디어 활성화의 핵심은 산학 연계
쾰른 시정부가 룩셈부르크의 RTL을 유치하면서 쾰른의 미디어 파크의 역사가 시작된다. 현재 쾰른은 독일 영화와 TV 프로그램의 30% 이상을 자체 제작하고 있다. 쾰른에는 유럽최대의 방송국인 WDR(Westdeuchtscher Rundfunk)와 DWD(Deutsche Welle and Deutschlandfunk), 독일의 3대 스튜디오 중 하나인 MMC 등이 소재하고 있다. 아울러 미디어 파크에는 소니 BMG, EMI 등 세계 유수의 음반회사와 영화사, 기획사, TV와 라디오 방송국이 입주해 있으며, 이들의 비즈니스를 원활하게 지원하기 위한 변호사, 회계사가 이 지역에 몰려 있다. 미디어 파크는 생활 복합 단지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미디어 인력들이 한 곳에서 업무와 주거의 해결이 가능하다. 미디어 파크가 성공하면서 세계 각국의 도시 개발자와 정부 관계자, 관광객 등이 몰려오고 있다.
쾰른의 장점은 바로 쾰른 미디어 대학에 있다. 쾰른 미디어 대학의 수업은 미디어 제작에 직접 투입 가능한 실용적인 커리큘럼으로 구성되어 있다. 교수들은 대부분 현직 엔지니어 출신이다. 학생들의 쇼케이스는 유명 프로듀서와 감독 등이 방문해 직접 영화를 만든 학생을 만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현재 쾰른 외곽에 유명 스튜디오들이 건립되면서 쾰른 미디어 대학의 학생들을 자연스럽게 흡수하고 있다. 미디어 파크에는 코메드라는 교육 지원센터와 멀티미디어 지원센터가 있어 중소기업들에 그들이 필요한 각종 서비스와 공간, 시설을 제공하고 있다.
1997년 12월 설립된 멀티미디어 지원센터의 주요 주주는 쾰른과 본의 금융기관이며 시와 주정부도 이사회에 참여하고 있다. 시정부는 지원금 분배가 목적이 아니라 멀티미디어 기업들의 발전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 참여하는 것이다. 이제 독일의 유명 TV 제작사와 영화사들이 쾰른에서 프로그램을 제작하면 편리하고 경제적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 쾰른의 성공 요인 중 유럽 최고 수준의 교통망도 있겠지만, 시와 주정부의 확고한 멀티미디어 육성 정책 의지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시 정부가 멀티미디어를 육성하겠다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점을 하나 둘씩 해결한 것이다.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제대로 기획된 지역 개발이 쾰른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경제 부활을 이끈 것이다.
- Beyond Promise 8월호 (사진 German National Tourist Bo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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