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는 작년 10월 IT 산업 육성을 위한 중장기 정책인 ‘디지털 프랑스 2012(Digital France 2012)’를 발표하며 정부 차원에서 IT 강국으로 도약할 채비를 갖췄다. 현재 프랑스의 IT 산업이 GDP에 차지하는 비중은 6% 남짓. 에릭 베송 당시 디지털 경제개발주 장관(현 이민·통합·국가 정체성 연대부 장관)은 ▲모든 국민들의 네트워크 접속 보장 ▲디지털 콘텐츠 확대 ▲디지털 서비스 다각화 ▲디지털 경제 관리 시스템 확대를 골자로 하는 ‘디지털 프랑스 2012’를 발표하면서 이 비중을 12%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총 154개의 실행 방안을 담고 있는 이 방대한 계획에 프랑스 정부는 7억 5,000만 유로(약 1조 3,300억 원)의 예산을 쏟을 예정이다. IT 산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프랑스는 현재 어떤 모습인지 들여다보자.
오랜 역사의 탄탄한 IT 저변 갖춰
‘와인’ ‘루브르’ ‘토론’ ‘축구’…. 대게 프랑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아날로그적이다. 하지만 프랑스는 기초과학은 물론이고 우주항공, 로봇공학, 정보통신 등 IT 산업 전반에서 뛰어난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다. IBM, 에어프랑스, 프랑스텔레콤, 시스코 등 1,300여 개의 글로벌 기업이 입주해 3만여 명의 IT 인력이 일하고 있는 첨단 기술 산업의 집적지인 소피아 앙띠폴리스(Sophia Antipolis)나 IT 관련 연구 결과를 산업에 접목하는 역할을 하는 국책연구기관 인리아(INRIA)는 IT 강국으로서의 프랑스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다.
재미있는 사실은 IT 기술의 집적지인 소피아 앙띠폴리스나 인리아의 역사가 40년 가까이 됐다는 점이다. 프랑스 니스 부근에 위치한 소피아 앙띠폴리스는 피에르 라피에트 박사가 1969년 ‘과학과 문화와 지혜의 신도시’를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개발초기부터 단순한 해외기업 유치가 아니라 연구개발을 중심으로 첨단기술산업, 연구소, 기업, 대학, 그리고 금융기관이 모여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혁신이 기업 창업까지 연결되는 상승효과를 염두에 뒀다. IT 산업이라는 용어가 존재하기 전부터 지식산업이 미래를 이끄는 핵심 가치임을 통찰하고 이 분야의 연구 및 지원을 지속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67년 설립된 인리아는 지난해 릴, 사클레이, 보르도 지역에 연구센터를 추가 개설해 총 8개의 연구센터에서 IT와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이 기관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IT 산업을 문화, 사회 등 다양한 분야와 융합할 수 있도록 5개년 계획을 세워 연구를 진행 중이다. 좀 더 광범위하고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해외와의 협력도 꾸준히 늘리고 있다. 인리아는 현재 26개 대학과 60개 여타 연구소와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IPTV와 모바일 인터넷의 성공적 모델
프랑스 IT 산업은 오랜 IT 지원 역사와 탄탄한 인프라를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특히 IPTV, 모바일 인터넷 등의 산업에 대해서는 시장 경쟁을 촉발할 수 있는 적절한 정책적 판단과 시장 감시를 통해 성공 모델을 만들어 나가고 있다. 프랑스 IT 산업 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IPTV의 경우 프랑스텔레콤의 네트워크를 기존 가입자망 공동활용(LLU) 제도를 통해 신규 사업자들도 쓸 수 있도록 했다. 신규사업자 유입은 자연스럽게 시장 경쟁을 촉진했고, 이는 인터넷, IPTV, 이동통신을 하나로 묶은 저렴한 결합 상품을 확산해 가입자 성장을 이끌었다. 현재 프랑스의 IPTV 가입자는 2008년 3분기를 기준으로 약 564만 명으로 이는 전 세계 가입자의 30%, 전 유럽 가입자의 7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와 연계해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는 연 평균 16%씩 증가하고 있다.
모바일 인터넷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프랑스 정부는 모바일 인터넷 시장이 개화하기도 전인 2001년부터 무선망 개방에 대한 기본 원칙을 세워놓았다. 모든 인터넷 사업자에게 모바일 인터넷 접근을 가능하게 했고, 이동통신사들은 이를 수용했다. 2008년 프랑스 방문 당시에만 해도 더디게 발전할 것 같았던 프랑스 모바일 인터넷 시장은 아이폰의 도입과 함께 1년새 비약적인 성장을 거뒀다. 프랑스 현지 전문가들은 현재 전체 이동통신 이용자의 5%에 불과한 무선 인터넷 가입자 수는 수년 안에 15%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프랑스의 개방성과 IT 육성책이 기회
프랑스 IT 산업의 발전 가능성은 소비자들의 열린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프랑스는 여느 국가에 비해 유독 자국의 문화상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게 드러나지만 프랑스가 강점을 갖지 못한 분야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하고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폰의 성공이다. 2007년 11월 판매를 시작한 아이폰은 현재 약 200만대 가량이 팔렸다. 이런 개방성은 새로운 서비스가 시도, 수용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워너브라더스 프랑스의 경우 유럽 시장 내에서 뉴미디어 플랫폼에 콘텐츠 유통을 실험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인터넷 서비스에 있어서도 데일리모션, 데저닷컴 등은 기존의 서비스를 프랑스적으로 해석해서 유럽 및 세계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다. 프랑스의 새로운 IT 육성 정책인 ‘디지털 프랑스 2012’는 발표 직후 예산 확보 문제와 방대한 사업 계획을 수행할 주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성공적으로 IT 산업 육성의 틀을 마련한 경험을 바탕으로 브로드밴드 보급, 전자정부 도입, 전자상거래 확산 등 IT 산업 전반의 발전을 이끌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프랑스 정부가 산업 육성에서 두 가지 기본철학(소비자 중심에서 생각하는 것과 기업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을 놓치지 않는 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보장돼 IT 산업 미래는 밝을 것으로 점쳐진다.
우리 기업에게는 열려있는 프랑스의 미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지혜가 요구되는 시기다. 우선, 내년까지 3개의 주파수 할당이 계획돼 있어 와이맥스를 비롯한 무선 브로드밴드 시장 확대가 예상된다. 이는 국내 기업이 프랑스 통신 시장에 진출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이 외에도 디지털 TV 및 디지털 라디오 전환 계획은 관련 장비 및 단말기 업체의 새로운 시장이 될 전망이다. 새로운 미디어로의 전환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다양한 콘텐츠의 확보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에 디지털 콘텐츠 분야 역시 프랑스 시장에 도전해볼 만하다. 무엇보다 지난 2006년 한-불 수교 120주년을 맞아 양측이 다짐했던 IT 분야에서 협력이 형식상의 구호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인 기업 진출까지 연결되도록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 기업에게 프랑스 시장의 성공적인 진출은 유럽까지 그 목표를 확대할 수 있는 발판 마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 글│이수운│전자신문 기자
- Beyond Promise 10,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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