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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5. 18. 13:41
'바늘 하나'로 세계를 지배하다

군살을 찾아보기 힘든 탄력 있는 몸매에 짙은 남색의 반팔 티셔츠, 몸에 딱 달라붙는 검정색 재킷과 바지, 그리고 가죽 스니커즈.

조르지오 아르마니(74·Giorgio Armani)는 회색빛 머리만 아니라면 70대 중반이라고 도저히 믿기 힘들었다.

수십년간 정상을 지켜온 거장(巨匠)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 그를 지난 4월 1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만났다. 1974년 그의 이름을 따 설립된 패션 회사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전 세계에 320개 매장과 50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으며, 연간 매출이 20억유로(약 3조2000억원)에 달한다.

코발트 블루 색인 그의 눈빛은 기자를 빨아들일 것처럼 날카롭고 강렬했다. 하지만 그는 인터뷰 내내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는 영어를 잘 알아 들었지만, 잘 말하지는 못한다. 그와의 인터뷰는 영어와 이탈리아어의 2단계로 이뤄졌다.

단순하고 절제된 옷차림은 그의 인생과 철학을 압축해서 표현해 주는 듯했다. 아르마니 본인이 아닌 누가 입더라도 '아르마니구나' 하는 인상을 받을 수 있는, 전형적인 아르마니 풍(風).

아르마니 풍이란 무엇인가? 아르마니 본인이 요약해 주었다. "절제된(understated) 우아함과 세련됨, 단순하고 깨끗한 선(線), 중성색(neutral color), 그리고 미(美)와 편안함, 실용성의 조화입니다."

아르마니는 한국 남성 패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풍성하게 감싸는 오버 사이즈가 상식이었던 남성 정장에 아르마니는 잘록한 허리 선과 흐르는 듯한 실루엣의 미학(美學)을 일깨워주었다.

그에게 패션은 무엇인가? 그는 "옷은 입는 사람의 개성을 살리는 수단일 뿐"이라며 "옷이 사람을 압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르마니 패션에 대해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게 없다"는 비판도 끊임 없이 제기된다. 그의 일생의 라이벌이었던 고(故) 잔니 베르사체(Versace)는 조르지오의 스타일을 회계사의 이미지에 비교하기도 했다.

기자는 물었다. "아르마니의 특징은 '튀지 않고 언제 봐도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장점이자 단점이지 않나요?"

조르지오의 대답은 단호했다. "일관성(consistency)은 장점이지 결코 단점이 될 수는 없습니다. 지난 30년간 저는 다른 패션 브랜드가 어떻게 하든, 일시적인 유행에 흔들리지 않고, 나만의 길을 걸어왔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제 직감이 대체로 맞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갑자기 마음이 변해 흔들리곤 하면 길을 잃게 되고 결국엔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게 됩니다."

아르마니는 이제 자신의 '패션 제국'을 우리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는 일에 남은 인생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사람들은 아르마니 카페에서 아침을 먹고, 아르마니 옷과 선글라스, 시계 차림으로 출근해 아르마니 휴대폰으로 통화하고, 집에 와서는 아르마니 침대에서 자고, 아르마니 TV를 보며, 아르마니 호텔과 리조트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다.

아르마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옷에 국한돼 온 제 디자인을 생활 속 어느 곳에서든 표현하고 싶습니다. 즉 입는 것뿐 아니라 먹는 것 그리고 생활하는 것 모두에서 사람들이 제 디자인을 느낄 수 있도록 말이죠. 제 디자인 비전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하는 작업이지요."

하지만 그는 이번에도 다시 일관성을 강조했다. "아르마니 브랜드의 위대한 점은 그것이 일관된 디자인 미학에 기반한다는 것이죠. 따라서 아르마니 이름을 단 모든 것은 서로 연관돼 있습니다. 저는 모든 가구와 직물, 액세서리가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를 느끼고 싶습니다. 이러한 통합(integration)이야말로 말로 아르마니를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르마니 패션 제국은 오로지 아르마니 개인에 의해 구축됐고, 지금껏 운영되고 있다. 그는 완벽주의자다. 그는 패션 쇼의 소품으로 쓰이는 꽃 장식 하나, 패션 모델의 발 걸음 하나까지 직접 챙긴다. 그는 아르마니 호텔과 리조트의 경우에도 가구, 인테리어는 물론 직원 유니폼까지 직접 디자인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뭔가 인생에서 의미 있는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장 작은 디테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뭔가 비범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집요할 정도로 가장 작은 디테일에 몰두해야 합니다."

인터뷰를 하면서도 그의 절대적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인터뷰에 배석한 홍보·마케팅 담당 직원 4명은 인터뷰가 시작되기 전부터 아르마니의 등 뒤 1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서서 그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까지 주시하며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아르마니를 뺀 그의 스태프 모두가 서로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지만, 아르마니에게만은 미스터 아르마니(Mr. Armani)라고 부른다.

그에게 일이란 무엇일까? "일은 저의 열정입니다. 저는 주말이면 절망에 빠집니다. 무엇인가에 집중할 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죠. 때문에 제 삶에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계속 일을 해야 합니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앞으로 25년은 더 일하고 싶습니다."


▲ 블룸버그

조르지오 아르마니(Georgio Armani)와의 인터뷰는 지난 4월 16일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아르마니 전용 전시장(Armani theater)에서 이뤄졌다. 삼성 아르마니 TV 출시 행사가 끝난 직후였다. 아르마니는 지난해 9월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쇼에서 삼성전자와 공동으로 아르마니 폰을 선보였으며, 아르마니 TV는 삼성과의 두 번째 인연이다. 전시장엔 아르마니의 토털 가구·인테리어 브랜드인 아르마니 카사(Armani Casa) 제품이 진열돼 있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동그란 렌즈 모양의 은색 안경테를 습관처럼 매만졌다.

―당신은 완벽주의자인 동시에 워커홀릭(workaholic)으로 불립니다.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사실 저는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매일 아침 무엇을 해야 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일어납니다. 회사에는 오전 9시 30분쯤 도착합니다. 사진, 호텔, 아르마니 카사, 매장 등 그날 주요 현안에 따라 해당 부서로 인도를 받죠. 일은 항상 많습니다. 때문에 문제가 발생하면 그것을 해결하는 데 5초 정도밖에 안 걸립니다. 대신 그때의 제 창의력은 최고에 이르죠."

최근 출간된 아르마니 전기(傳記)에서 그는 "디자인을 구체화하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서는 안 되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절대 수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런 탓일까, 그는 "조명, 사진작가, 관객 등 무대에 모든 것이 준비돼 패션쇼를 시작하려는 순간, 의상이 모조리 사라지는 악몽을 자주 꾼다"고 소개했다.

―요즘 명품 브랜드의 트렌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시나요?

"최근 럭셔리 브랜드를 보면 너무 튀려고 하는 것(to shock or to be showy) 같습니다. 하지만 제게 있어서 럭셔리란 품질(quality)입니다."

―다른 명품 브랜드들은 여성 고객이 80% 이상입니다. 반면 아르마니는 남성 고객의 비율이 절반 정도를 차지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누구에게나 다가가고 싶습니다. 저는 남자든 여자든 태어나서부터 유년기, 성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타일을 제시하고 싶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여성 고객을 더 유치하기 위한 전략은 없나요?

"특별한 계획은 없습니다. 다만 시간과 문화 그리고 습관에 의해 발전돼 온 제 영감(inspirations)에 따를 뿐입니다. 여성의 경우 사회 생활이나 일상에서 자신감 있고 편안해야 한다는 게 제 신념입니다. 여성들이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더 여성스럽고 우아해지면 좋겠습니다.

■"삶 전체를 아르마니 디자인으로 꾸미고 싶어"

―당신은 지난 2000년 이후 사업 분야를 패션에서 홈 컬렉션(가구 및 인테리어) 그리고 호텔과 리조트에 이르는 라이프 스타일 산업으로 확장해 왔습니다. 새로운 분야로 진출하는 주된 목적은 무엇인가요?

"저는 도전을 좋아합니다. 아르마니 카사를 통해 저는 지난 30여 년간 발전시켜온 저의 패션 철학과 언어를 주거 환경으로 확장하고 싶었습니다. 이번에 삼성전자와 함께 아르마니 TV를 출시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고객들에게 아르마니의 새로운 면모를 보일 수 있는 기회가 되니까요."

―아르마니 호텔과 리조트는 다른 호텔과 무엇이 다른가요?

"아르마니 브랜드의 가장 큰 장점은 일관성입니다. 아르마니라는 이름이 걸린 모든 것은 서로 연관이 있는 것이죠. 따라서 제가 디자인한 호텔과 리조트에서는 가구와 쿠션, 촛대, 램프가 모두 조화를 이루면서 더욱 친밀하고 아늑한 공간을 즐길 수 있을 겁니다. 호텔과 리조트에 들어선 순간부터 나갈 때까지 아르마니의 디자인 속에서 생활하게 되는 것이죠."

―아르마니뿐 아니라 베르사체, 불가리, 샤넬 등 세계적인 패션 기업들이 브랜드 확장(brand expansion)에 적극 뛰어들고 있습니다. 패션뿐 아니라 카페, 레스토랑, 더 나아가 인테리어, 호텔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죠. 이로 인해 고유의 패션 브랜드로서 자산 가치가 떨어진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브랜드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이 어떻게 브랜드 가치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반대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영역으로의 확장은 성장이고, 진화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패션 브랜드들이 이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본래의 가치를 간직하면서 브랜드를 확장하려면 진정으로 일관성 있는 비전과 접근 방법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주거 인테리어 디자인에서도 '아르마니 스타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아르마니 인테리어는 절제된 우아함과 세련미로 집약됩니다. 동시에 편안하면서도 실용적인 미(美)의 조화가 핵심입니다. 아르마니 정장이 아름다우면서 늘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것과 같이 아르마니 인테리어도 세련될 뿐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 실용적이고 기능적이어야 합니다."

―최근 서로 다른 산업 간에 브랜드와 디자인, 그리고 기술이 융합되고 있습니다. 일례로 한국의 고급 아파트 개발자가 유명 패션 디자이너에게 인테리어 콘셉트 개발을 의뢰했습니다.

"그런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이탈리아, 프랑스, 러시아, 미국에서도 나타나고 있어요. 저로서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아르마니 카사는 고급 주거단지를 개발하는 건설업체뿐 아니라 개인 고객의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컨설팅해주고 있는데, 이미 큰 성공을 거두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인테리어 디자인 서비스를 핵심 사업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비전과 일관성이 성공 비결

―아르마니 그룹은 매출액이 3조원을 넘는 대형 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만 아니라 기업가로서의 역할과 자질도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경영인으로서의 성공 비결은 무엇입니까?

"비전과 일관성입니다."

-당신은 "모든 사람이 고객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3%만 내 옷을 이해해주면 된다"고 했는데, 요즘도 그런 생각은 변함이 없습니까?

"오늘날 아르마니의 영역은 기성복부터 최고급 맞춤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합니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상류층을 겨냥한 브랜드인 반면 아르마니 진(Armani Jeans)과 엠포리오 아르마니(Emporio Armani), 아르마니 익스체인지(Armani Exchange)는 미국과 영국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물론 정직하게 말하면 저의 고객 베이스는 최상류층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로 인해 기회를 잃는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의 품질에 대한 집착은 저가 시장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년 전 아르마니의 홈(인테리어) 컬렉션의 경우 동양적인 색깔이 짙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당시 동양적인 디자인은 유럽에서는 성공을 거둔 반면, 아시아 시장에서는 아르마니 스타일답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동양적인 미를 그렇게까지 강조하지 않는 대신, 아르마니 디자인에 좀 더 충실했어야 했다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저는 한번 실수를 하면 왜 잘못됐는지 되돌아보며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르마니 제품에서 동양적인 미는 배제되는 것인가요?

"아닙니다. 패션에 있어서 동양의 미는 굉장히 중요한 요소입니다. 특히 저는 우아한 분위기가 배어 나오는 동양적인 분위기를 좋아합니다. 지난 30년간의 제 컬렉션에서 동양의 미를 여기 저기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다음 일정을 의식하는 듯 연신 시계를 보았다. 배석한 스태프들은 "더 이상 질문을 못받는다"고 재촉했다. 하지만 그의 허락을 받아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그것도 당돌한 질문을.

―현존하는 최고령 디자이너라는 말도 있습니다. 은퇴할 계획은 없나요?

(그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굳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없습니다. 은퇴하면 뭘 할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 아르마니가 없는 내 인생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는 곧 웃음을 회복하더니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악수를 했다. 그리곤 총총히 자리를 떠났다.

지난해 출시된 아르마니 카사 제품의 이름은 A로 시작됐다. 올해는 B로 시작한다. 과연 아르마니 제품 명의 첫 글자가 Z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아르마니 패션은 남녀노소를 모두 아우르지만, 아르마니의 높은 명성은 주로 남성복에서 축적됐다. 그는 특히 현대적이면서도 절제되고 차분한 재킷 디자인으로 '재킷의 왕'이란 별명을 얻었다.

1934년 이탈리아 피아첸차(Piacenza)에서 태어난 그는 연극용 가발을 만들던 친할아버지와 가구를 만들던 외할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손기술이 뛰어났다. 그는 의사가 되기 위해 밀라노국립대학 의학부에 진학해 2년간 공부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중퇴한다.

백화점에서 사진사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그는 백화점 쇼윈도 장식과 남성복 구매담당 보조로 일했다. 그러다 유명 패션업자인 니노 체루티(Nino Cerruti)에게 '옷을 고르는 감각이 탁월하다'고 인정받아 1964년 남성복 디자이너의 길로 접어든다.

그는 1974년 사업가 세르지오 갈레오티(Sergio Galeotti)와 함께 조르지오 아르마니사(社)를 설립, 남성 기성복을 선보였고, 이듬해 여성복을 내놓았다.

아르마니는 1970년대 이탈리아인의 옷차림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딱딱하기만 하던 남성 정장에는 편안함과 세련미를 줬고, 우아함만을 고수하던 여성복에는 힘과 실용성을 부여했다.

그는 할리우드 유명 스타들의 옷을 디자인하면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특히 영화 '아메리칸지골로'(1980)에 출연한 리처드 기어(Gere)의 의상 디자인을 맡아 유명 인사가 됐다.

그는 경쟁 관계이던 잔니 베르사체(Versace)와 많은 말다툼을 벌였다. 두 사람은 급기야 한날 한 시, 즉 1992년 9월 8일 저녁 7시30분에 패션쇼를 열겠다고 선언했으며, 가족들의 중재로 간신히 불상사를 피했다.

그는 지난 2006년 여성 모델 애나 캐롤리나 레스턴(Reston)이 목숨을 잃자 말라깽이 모델 기용을 금지한 최초의 디자이너이기도 하다.

그는 선글래스를 즐겨 쓰는데 이유가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친구들과 불발탄을 갖고 놀다 발생한 폭발 사고로 친구는 죽고 아르마니는 심한 화상과 함께 눈을 다쳤다. 그는 20일간 안대를 하고 어두운 방에 누워 있어야 했다. 그의 눈은 지금도 완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는 진한 청색 옷을 즐겨 입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그의 집의 커다란 옷장은 긴 복도를 다 차지하며 문짝이 48개나 되는데, 무수히 많은 진청색 티셔츠들과 거의 비슷한 디자인의 검정 혹은 베이지색 바지들로 가득 차 있다.

그는 독신이며, 여동생과 조카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포브스'지에 따르면 그의 재산은 41억 달러(약 4조30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