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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6. 23. 12:49

IT 산업에서 급성장하고 있는 당신의 기업이 어느 날 빌 게이츠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면 당신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이제부터 당신은 기업의 생존을 위해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제안한 인수안을 수용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기업들처럼 옛 기억들 속으로 사라질 것 인가를 곰곰이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당신에게는 결코 많은 시간이 남아있지 않았다. 레드마켓의 강자인 MS가 이미 당신의 시장을 공략할 준비를 완료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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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시작은 IBM, 완성은 윈도우 95

많은 사람들이 세계 갑부 1위를 다투고 있는 빌 게이츠를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적인 인물로 꼽지만 부유한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큰 어려움 없이 자란 사람이다. 때로는 집안의 영향력을 적절하게 이용해 Microsoft(이하 MS)의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메리칸 드림의 대표적 인물로는 그보다는 오히려 경쟁자로 꼽히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를 꼽을 수 있다. 빌 게이츠는 미국 서부 명문가의 자손으로 태어났으며, 아버지인 윌리엄 H. 게이츠 2세는 저명한 변호사에 외할아버지 J. W. 맥스웰은 미국 국립은행 부은행장이었다. 지금의 모범생 같은 빌 게이츠 모습을 보면 연상하기 쉽지 않지만, 그는 잡기에 능한 인물로 알려졌다. 하버드 대학 시절 재미없는 법학 수업에 빠지고 기숙사에서 포커를 즐겼는데, 이때 그가 딴 엄청난(?) 금액이 MS의 자본금이 되었다는 소문도 있다. 명문 중에 명문인 하버드 법대의 입학생들 역시 명문가의 자제였을 확률이 높기 때문에 대학생들 포커판이라고 해도 제법 판돈이 컸을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해 소문이 아닐 확률도 높다.

하버드대학교 법학과를 중퇴한 빌 게이츠의 비즈니스 첫걸음은 최초의 상업용 소형 컴퓨터 알테어 제작사인 MITS에 프로그래밍 언어인 베이직 프로그램을 개발해 판매한 것이다. MS 공동 창업자인 폴 알랜과 8주만에 개발한 베이직 프로그램은 쟁쟁한 경쟁회사들을 물리쳐 MITS 담당자를 놀라게 했다. 빌 게이츠가 이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그가 프로그램 개발 능력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그러나 그에게 훌륭한 개발능력을 있었다면 현재의 MS의 모습은 기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MITS가 마이크로소프트의 성장의 발판이 되었지만, 너무 적은 판매량으로 빌은 만족하지 못했다. 결국 MS는 1977년 마케팅 이행노력 부족을 이유로 계약 파기를 선언한다. 법원 승소 후(빌의 가문을 고려해보면 질 수가 없다) MS는 자신들이 개발한 베이직을 다른 회사에 판매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MS의 매출이 100만불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MS는 경쟁자들이 키운 기업이다. MS는 MITS를 발판으로 삼았고, 이후 성장의 밑거름으로 애플을 이용했고, 도약은 IBM을 통해서였다. 경쟁사가 키웠다는 것은 당시 IT 시장 자체가 좁았던 사실도 원인이되겠지만, 경쟁사의 경영진들이 빌 게이츠만큼 시장을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IT 업계에서 최악의 계약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IBM이 MS-DOS를 MS에서 납품받으면서 라이선스까지 구매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 라이선스까지 구매했다면 일시에 많은 수익이 MS에 돌아갔겠지만 장기적인 성장의 밑거름을 마련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IBM 경영진이 메인프레임 시장에 전사적인 노력을 집중했고, IBM 호환 PC 시장을 과소평가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다. 빌 게이츠와 IBM의 계약에는 그의 부모의 보이지 않는 압력도 작용했지만, 미래를 예견한 빌의 능력이 가장 탁월했다. IBM이 인텔을 선택하게 한 것도 실제는 빌의 충고 때문이었다. 당시 최고의 성능을 자랑하던 모토롤라 CPU를 IBM이 검토하는 과정에서 빌이 호환성이 좋다는 이유로 인텔을 권했기 때문이다. 결국 IBM은 애플 II로 급속하게 성장하던 애플을 제압할 수 있었지만 MS와 인텔을 키웠고, 이들 기업은 차후에 IBM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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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예견하는 빼어난 식견

빌 게이츠는 1970년대 하드웨어 부속품으로 끼워 팔던 소프트웨어를 산업화한 인물이다. 그는 운이 좋았다고 평가하지만, 사람들은 결코 그의 운만으로 MS가 성공했다고 보지 않는다. 그가 만든 MS의 인적 조직은 IT 업계 최강 조직으로 꼽힌다. 그가 시장에 대한 정확한 식견을 가지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면 동업자인 폴 알랜이 개발을 총괄하고, 스티브 발머는 제품이 성공할 수 있도록 재무, 경영, 마케팅을 책임진다. 빌이 설혹 시장에 대해 잘못된 의견을 내놓더라도 상관없다. 이미 MS 조직 내에 잘못된 의견을 조율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경쟁자에게는 잔인하며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한다. MS가 진출한 시장에서는 잔인한 학살이 벌어지며 결국 살아 남는 것은 MS다. MS는 IT 업계에서 가장 여유자금이 많은 기업이며, 그 자금력에 대항하기는 쉽지 않다. 또 잠재 위험을 수시로 그리고 확실하게 제거한다. 애플이 맥전용 베이직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자 애플의 하청업체였던 MS는 애플 II의 인기 프로그램인 베이직 프로그램 공급을 포기한다고 발표해 애플사가 베이직 개발을 포기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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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텔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MS가 윈도우 95의 성공으로 고무된 시점, 인텔이 갑자기 리눅스 관련 서적을 구매한 것을 알게 된 빌 게이츠는 바로 인텔 CEO인 앤디 그루브에게 전화해 “인텔은 하드웨어업체인데 소프트웨어를 연구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라고 MS의 의사를 전달한다. 인텔은 빌 게이츠의 전화를 받고 OS 개발을 포기한다. 그리고 MS에 충성도가 높은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을 실시하고 있다.

델은 MS에 충성함으로서 하드웨어 시장에서 선두를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회의 중 자신의 의견에 맞지 않으면 폭언을 하기도 하지만, 타인의 합리적인 의견을 잘 수용하는 인물로도 알려졌다. 90년대 초 그는 인공위성을 이용하는 새로운 통신 채널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런 그의 결심을 바꾼 것은 한 통의 내부 이메일이었다. 어느 날 그에게 도착한 이메일에는 인터넷의 중요성이 조목조목, 그리고 논리정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그는 이메일을 읽은 후 인터넷 시장에 전사적 역량을 집중한다. 넷스케이프와 대항하기 위해서 경영회의에서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공짜로 뿌려야한다는 의견이 개진되자 그는 의견을 개진한 중역에게 “당신 공산주의자냐?”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빌은 그 의견을 받아들여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공짜로 배포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넷스케이프는 시장에서 사라지고 만다.
- Beyond Promise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