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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 7. 31. 18:35
세계 경제는 과거 20년간 안정적인 금융정책, 저유가, 신흥시장의 호조 등에 힘입어 초안정기를 구가해 왔으나, 최근의 글로벌 금융 쇼크와 원자재 가격 급등을 두 축으로 하는 상호연쇄적인 악순환은 이러한 안정 성장 구도를 위협하고 있다.  세계 경제성장률의 표준편차와 물가상승률로 측정되는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지수는 그 동안의 개선 추세가 역전돼 최근 눈에 띠게 악화되고 있다. 특히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대두된 물가 상승 우려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함께 달러화 불안, 글로벌 과잉유동성 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요 연구기관들은 내년도 세계 경제의 침체나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발생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으나, 올해 급락한 세계 경제가 내년에 추가적인 하락세를 보이고 물가 상승률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초고유가와 글로벌 금융불안이 장기적으로 지속되면서 미국 발 금융불안이 단속적으로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미국의 경제력 쇠퇴와 국제적 위상 하락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1. 더블 쇼크에 따른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증대 
 
 
글로벌 금융 불안과 초고유가의 더블쇼크 
 
신흥시장의 호조와 함께 고성장·저물가를 구가하던 세계 경제의 구도가 초고유가와 국제금융 불안으로 인해 위협받고 있다. 작년 여름에 심각해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 문제는 미국 경제에 대한 불신을 야기해 달러화의 급락과 함께 석유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의 급등세를 부채질해 왔다.
 
서브프라임 문제는 지난 3월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거대 투자은행인 베어스턴스의 구제에 나섬으로써 소강 상태를 보였으나 글로벌 시장에서 채권 발행액 급감, 증권화 금융상품의 기능 상실 등 금융경색 현상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7월 들어서는 정부 보증 기업인 패니매와 프레디맥의 주택 관련 채권 부실화 문제도 터져나왔다. 이들은 공식적으로는 서브프라임과 같은 신용도가 낮은 채권을 직접 매입하지 않은 기관들이어서 시장의 불안을 더욱 증폭시켰다. 금융 불안의 진원지인 미국 주택시장의 침체도 계속되면서 실물경제와의 동반 위축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손실액이 국제통화기금(IMF) 기준으로 9,45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서브프라임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수준의 금융위기로 비화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불안이 장기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공격적인 금리인하 정책이 달러화 하락과 함께 투자 자금을 달러화 자산에서 원유, 금속, 곡물 등 실물자산으로 옮기려는 투자 행동을 유발함으로써 각종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부채질하고, 이것은 다시 글로벌 금융 불안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이 진행되어 왔다. 세계 경기의 둔화에도 불구하고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물가상승 압력이 가시화됨으로써 선진국 및 개도국에서 금리가 상승 추세로 돌아서고 있어 글로벌 금융 불안이 악화될 우려도 있다. 더구나 원유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의 상승은 미국을 비롯한 공업국들의 교역조건을 악화시키고 막대한 소득을 자원보유국으로 이전시킴으로써 미국 등 선진국들의 소비 경기를 더욱 위축시키고 있다.  
 
고유가 현상이나 자원보유국으로의 소득 이전은 그 동안에는 세계 경제의 고성장을 크게 위협하지 않았으나, 최근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극심해지면서 각국의 물가 상승세가 고조되고 글로벌 금융 불안을 악화시키는 등 세계 경제를 위협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Great Moderation은 끝나는가 
 
현재의 고유가 현상은 일시적인 투기요인들보다 BRICs를 비롯한 신흥시장의 고성장 추세와 원유공급 제약 등 구조적 요인들이 더 많이 작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금융 불안 및 달러화 위기가 가세하고 있는 것이다. 고유가 현상과 글로벌 금융불안이 서로 맞물리면서 세계 경제에 대한 악영향이 고조됨으로써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세계 경제의 안정성장기(Great Moderation)’가 마감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경제는 지난 1980년대 중반 이후 저유가 시대에 접어들면서 물가의 안정과 함께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경기의 진폭이 축소되는 모습을 나타냈다. Stock and Watson1)은 주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의 진폭이 1984년을 기점으로 낮아져 세계 경제가 안정화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그림 2>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지난 1980년대 중반 이후 세계 GDP 성장률의 표준편차는 그 이전에 비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세계 GDP성장률의 표준편차와 세계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합성함으로써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정도를 나타낼 수 있다. 필자는 이를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지수’라고 부르고자 한다. ’80년대 이후 불안정성지수가 하락한 데는 원유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의 안정화, 선진국의 안정적인 정책 운영, 국제금융 시스템의 안정화 등이 기여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0년대 이후 국제유가의 상승세가 점점 강해지고 있는데다 국제금융 시스템도 불안한 모습을 보이면서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는 추세에 있다. <그림 2>와 같이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아직 크게 높아진 상태는 아니지만, 그 동안의 세계 경제 불안정성지수의 개선 추세가 반전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즉, 세계 경제 성장률의 표준편차가 다시 확대되는 한편 선진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높아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초안정화 구도가 서서히 약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세가 계속되고 선진국을 비롯한 각국의 경제정책도 과거에 비해 불안정성을 나타내고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세계 경제의 안정화에는 국제 원자재 가격의 하락과 함께 재량적인 재정 확대 정책을 피하고 경기 조절을 금융정책에 의존하면서 물가 안정에 주력하는 경제정책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크게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박스> 참조).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이 이라크 전쟁을 감행함으로써 재정지출의 불안정성이 확대되어 과거 베트남 전쟁기와 같이 달러화를 전세계로 대량 살포하는 한편, 세계 최대의 순채권국인 일본이 0%대 금리정책을 장기간 고수함으로써 글로벌 과잉유동성 문제도 장기화되고 있다. 더구나 서브프라임 위기로 인해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들이 물가를 억제하기 어려운 낮은 수준의 금리를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인 것도 불안정성을 더욱 키우고 있다. 국제 원자재 가격의 안정과 주요국의 안정적인 정책 운영이라는 세계 경제의 초안정화 구도가 약화됨으로써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2. 달러화 약세와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의 부활 
 
 
달러화 불안과 고유가가 몰고 오는 물가상승 압력 
 
세계 경제의 불안 요인으로 대두된 물가상승 우려는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함께 달러화 불안과 과잉유동성 문제가 그 배경에 있다. 미국의 재정수지 악화와 함께 막대한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에 그 동안 막대한 달러화가 유입되고 각국이 환율 안정을 위해서 외환시장에 개입한 결과 외환 보유고가 확대되어 왔다. 이와 같은 외환보유고의 누적 과정에서 신흥국 중앙은행들이 달러화를 매입하기 위해 국내통화를 공급하게 되며, 이 때문에 신흥국들에서 물가상승 압력이 고조되어 왔다.  
 
먼델-플레밍모형(Mundell-Flemming model)에 따르면 △자유로운 자본이동 △환율의 안정성 △금융정책의 자율성 중에서 충족이 가능한 것은 2가지뿐이며, 한 가지를 희생해야 한다. 중국 등 신흥국들은 해외자본의 유입 정책과 환율 방어를 선택함으로써 금융정책의 자율성을 희생해 물가 압력을 감수해왔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최근 고유가로 인해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걸프협력회의(GCC) 회원국들은 달러화 연동제를 유지하고 있어 과잉유동성 팽창에 따른 물가상승 압력이 고조되고 있다.
 
<그림 3>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환율이 저평가된 국가일수록 물가 상승률이 높아지는 관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환율을 방어함으로써 구매력평가 환율에 비해 실제 통화 가치를 낮은 수준으로 유지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과잉유동성 확대, 수입물가 상승 등이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최근의 현상은 일견 1970년대의 달러화 위기 당시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당시 달러화에 대한 불신과 함께 선진국들의 물가상승 압력이 고조되고 각종 원자재 가격도 급등하면서 전후 국제통화 시스템이었던 브래튼우즈 체제가 무너지고 변동환율제로 이행하게 된 것이다. 당시 고성장 국가였던 일본이나 독일이 노동력 부족 경제로 전환되면서 성장세가 하락하고 미국 발 과잉유동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본격화되자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고정환율제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지금은 그 당시와 달리 중국, 인도 등 신흥국들이 성장잠재력이 충분히 남아 있고 아직 과잉노동력 경제 단계에 머물고 있다는 차이가 있다. 중국 등에서는 높은 임금상승률이 지속되고 있으나 아직 생산성 증가율을 크게 웃돌아 물가를 끌어올리고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들 신흥국과 선진국 사이의 임금격차로 인해 신흥국 제품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높아지면서 발생하는 제조업의 물가 하락 압력이나 선진국 근로자의 임금 상승 억제 압력도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전자제품 분야의 경우 물가 하락 압력이 계속되고 있으며, 중국, 인도 등이 자동차나 중화학공업 제품을 본격적으로 수출하기 시작할 경우 물가하락 압력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다만 이러한 신흥국들의 고성장으로 인해 매장량과 생산능력 확대에 한계가 있는 각종 자원의 수급 문제가 악화되는 부작용이 점차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며, 이것이 전반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조시키고 있다.  
 
BRICs가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7년 이미 21.4%에 달하고 있으며, 중국 단독으로는 10.8%에 이른다. 매년 10% 성장하고 있는 중국만으로 세계 경제는 1%p 성장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과거 일본, 독일이 후발국으로서 선진경제를 위협할 때나 NICs가 부상할 때와 달리 인구 규모가 합계 28억 2,000만명으로 OECD 회원국 합계 11억 8,000만명의 2배를 넘는 BRICs의 고성장과 이에 따른 자원보유국 등 개도국들의 전반적인 성장세 고조가 세계 경제에 근본적인 충격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들 신흥국들의 경우 선진국들과 달리 거시경제 정책을 안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각종 정책 인프라가 미약하고 정책 역량도 떨어져 세계 경제에 대한 이들의 비중 상승은 물가 불안 요인으로 작용하기 쉽다.  
 
이러한 신흥국들의 고성장으로 인한 수요 확대가 달러화 불안과 맞물리면서 원유뿐만 아니라 동, 철강 등 각종 원자재의 동반 가격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생산과정에서 석유 의존도가 높은 농산물의 가격이 고유가 충격과 미국의 농산물을 이용한 에탄올 연료 증산 정책 등으로 인해 급등하고 있어 1인당 소득 수준이 낮고 식품 소비 비중이 높은 개도국에서 물가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오일쇼크에 따른 세계 경제의 충격 
 
글로벌 차원에서 인플레이션 압력을 고조시키고 있는 현재의 국제유가 급등 현상은 달러화 불안, 신흥시장의 과도한 성장세, 자원 제약에 대한 불안감 등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과거의 제1, 2차 오일쇼크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1, 2차 오일쇼크 당시에는 중동전쟁이나 이란혁명, 이란-이라크전쟁 등의 지정학적인 돌발 사태로 인해 세계 석유 공급량이 갑자기 감소하여 심리적인 쇼크를 동반하면서 글로벌 경제가 위축되었다. 이와 달리 현재의 고유가 현상에는 공급 불안감이 만연하고는 있으나 실제로 세계 석유 시장에 심각한 공급 차질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며, 국제유가가 단계적으로 상승해 왔다는 특징이 있다.  
 
다만, 과거 오일쇼크의 경우도 제1차와 제2차 간에는 차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제1차 오일쇼크의 경우 1973년 평균 유가가 배럴당 3.3달러에서 1974년에는 11.6달러로 급등해 세계 경제가 74, 75년에 극심한 침체를 보였으나 국제유가는 그 이후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고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었다. 반면, 제2차 오일쇼크의 경우 79년~82년까지 국제유가가 배럴당 30달러를 상회했으나 83년 이후 떨어지기 시작해 86년에는 배럴당 14달러까지 떨어졌다.  
 
제1차 오일쇼크에서 제2차 오일쇼크까지의 기간은 세계석유 시장의 구조 변화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연속성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석유시장의 근본적인 수급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10년 정도 소요된 것이다. 예를 들면 73~80년 사이에 국제유가가 10배나 상승함으로써 전력 생산 분야 등에서 석유 의존도를 줄이는 수요 대체 노력이 세계적으로 확대되었다. 한편 북해 유전 개발 등 비(非)OPEC 산유국들의 석유 생산의 확대라는 공급 측면에서의 혁신이 가속화되고, 그러한 성과가 제2차 오일쇼크 이후에 가시화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즉, 1970년대에서 80년대 초의 오일쇼크를 계기로 발생한 세계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을 억제한 것은 금융정책의 역량 향상과 함께 미시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진 이러한 석유 대체 노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보면 돌발적인 공급 쇼크가 강조되는 제1, 2차 오일쇼크의 경우도 그 배경에는 세계 석유시장의 구조적인 변화 동인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고유가 현상의 경우도 세계 석유 시장의 구조적인 수급 요인이 해결되는 데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그 때까지는 세계 경제가 경기순환에 따라 침체되더라도 국제유가가 크게 하락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금년 하반기 이후 2009년에는 세계 경기의 후퇴와 함께 세계 석유시장의 수급 상황이 다소 개선되겠지만, 중기적으로 보면 수급 여건은 더욱 악화할 가능성이 높다. IEA가 지난 7월에 발간한 중기 석유시장 보고서2)에 따르면 수급 불안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지표인 OPEC의 석유 잉여생산 능력은 1일 기준 2008년 252만 배럴에서 2009년에는 419만 배럴, 2010년 427만 배럴로 다소 호전되겠지만, 2011년 이후 다시 감소해 2013년에는 103만 배럴로 세계 전체 수요의 1.1%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게다가 이번 보고서에서는 세계 최대의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1일 기준 석유 생산 능력이 2008년의 1,074만 배럴에서 2013년에는 1,252만 배럴로 증가할 것으로 낙관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세계 최대의 가와르(Ghawa) 유전이 이 기간에 피크오일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와 같은 수준으로 생산 능력을 확대할 수 있을 것인지 불확실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세계 석유 의존도로 보면 국제유가가 2008년 기준으로 140달러를 넘을 경우 수요 위축 및 물가상승 압력 고조 등의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추가적인 유가 급등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림 6>과 같이 국제유가가 향후 1~2년 안에 200달러를 돌파할 경우 세계 석유의존도가 제2차 유가파동기의 7%를 훨씬 초과하여 세계 각국 기업이나 소비자가 견디기 어렵기 때문에 수급 요인에 의해 유가가 200달러를 돌파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세계 석유 의존도 7%라는 수치 자체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제2차 오일쇼크의 경제적 충격에 해당하는 수준으로서 원유 수요에도 영향을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이스라엘이나 미국의 이란 공격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국제유가가 200달러를 넘을 경우 인플레이션이 본격화되면서 초고유가 현상이 일정 기간 고착화될 위험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과거 제1차 오일쇼크에서 제2차 오일쇼크 기간 때처럼, 세계 경제가 부진을 보이면서도 국제유가가 떨어지지 않고 200달러를 넘는 고유가 현상이 지속되어 각 경제주체들의 인플레이션 기대심리가 본격화될 수 있는 것이다. 이 경우 <그림 6>의 글로벌 인플레이션 시나리오에서 보는 바와 같이 세계 명목 GDP가 달러화 약세와 인플레이션 효과로 부풀어지기 때문에 2010년에 국제유가가 200달러를 돌파해도 세계 석유의존도는 7%대에 머물게 된다. 다만, 이 경우 선진국 금리도 급등하는 등 세계 경제에 대한 충격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인 고유가 현상은 장기적으로 보면 에너지 절약 기술이나 대체에너지 개발을 촉진할 것으로 보여, 결국에는 에너지 산업의 구조 전환을 통해  고유가 현상이 수그러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석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사회경제적으로나 쉬운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구조 전환이 얼마나 소요될 것인지 불확실한 실정이다.
 
 
3. 세계 정치경제의 파워 시프트 
 
 
글로벌 금융 불안의 장기화 
 
구조적인 전환기를 맞이한 세계 경제의 향방은 상당히 불확실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IMF3)나 Global Insight4) 등의 연구기관들은 올해 세계 경제성장률이 지난해에 비해 1%p 정도 하락하지만 내년에는 올해와 거의 비슷한 수준의 성장률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에 관해서도 IMF가 2008년 4.7%, 2009년 3.6%로 전망하고 Global Insight도 2008년 4.8%, 2009년 3.0%로 전망하고 있어 글로벌 인플레이션의 가능성을 부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란 공격 등의 돌발 사태가 없는 한 세계 경제가 단기적으로 극심한 침체나 글로벌 인플레이션에 빠질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전망과 달리 세계 경제의 불안정화 속에서 고유가 및 금융불안 충격으로 인해 내년도 세계 경제가 올해보다 부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이며, 신흥국들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의 물가상승 압력도 기존의 예상보다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단기적 경기순환 못지 않게 구조적인 트렌드가 어떤 방향으로 바뀔 것인지도 계속 세계 경제의 주요 이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금융불안과 초고유가 현상이 기존의 세계 경제 트렌드에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주목된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가 초고유가와 겹치면서 미국 중심의 글로벌 금융질서는 재편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이며, 그 동안 초호황을 구가해 왔던 글로벌 투자은행들의 전성기도 마감될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막대한 재정수지 및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살포된 달러화가 신흥시장에 축적돼 신흥국들이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시장에 개입하면서 다시 미국으로 자금을 이전시킨 후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신흥시장으로 투자해 왔던 패턴이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가계 부실로 인해 막대한 타격을 입은 것이 드러난 패니매와 프래디멕은 미국 정부의 묵시적인 보증을 믿고 세계 각국 중앙은행이나 금융기관들이 투자하여 미국으로 유입되는 막대한 자금흐름의 중심적인 역할을 해 왔다. 중국이나 일본의 중앙은행도 수천억 달러씩 투자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이들의 부실화는 미국 및 달러화에 대한 신뢰 추락과 더불어 글로벌 차원의 금융경색의 계기가 될 수 있는 리스크를 내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도 이들 두 기관의 부실 문제가 드러나자 그 동안 부정적인 입장으로 일관해왔던 부실 금융회사들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 정책을 검토하고 있다는 것을 즉각적으로 발표해야 했다. 미국 정부가 FRB를 통한 유동성 지원뿐만 아니라 대형 회사들의 국유화를 포함한 공적자금 투입 정책을 결정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패니메와 프레디멕의 채무는 합계 5조 달러 수준, 2007년 미국 GDP의 36%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라는 것이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FRB를 통한 유동성 지원과 달리 재정지출을 통한 공적자금 투입에는 의회의 승인도 필요하다. 그리고 패니매, 프레디멕 문제의 해결 과정에서 미국 국민들의 조세 부담이 확대되기 때문에 앞으로 미국정부가 새로운 금융부실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정치적 부담이 확대될 우려도 있다.  
 
미국 경기 자체도 초고유가에 따른 소비 및 기업투자 위축 효과와 함께 1,000억 달러에 달하는 감세정책의 효과 소멸로 인해 금년 4분기 이후에는 다시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주택 불황이 더욱 깊어질 가능성도 있다. 우량 채권만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던 패니메와 프래디멕의 부실화는 미국의 주택 관련 채권 부실 문제가 전반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 정부는 그 동안 부동산 대출 부실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구조조정 대책보다도 금리 인하나 감세 등의 경기 대책을 통한 우회적인 해법을 강구하는 일본식 대처로 일관해왔다. 일본에 비해서는 빠르게 대응했으나 역시 후행적 대처라는 한계가 존재한다.  
 
이러한 대처 방식이 부실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또 미국 정부가 앞으로 일본 정부가 장기불황 막판에 강구한 바와 같이 예방적인 차원의 금융기관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을 효율적으로 실시할 수 있을 것인지도 미지수이다. 앞으로 미국 경기가 둔화되면서 실물경제와 금융부실의 악순환이 확대되고 금융기관들의 부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미국 정부가 대응하는 식의 완만한 구조조정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 정부가 후행적으로나마 부실 금융기관들에 대한 대처 요법을 강구할 것으로 예상돼 미국 금융 시스템의 급격한 붕괴는 억제될 것으로 보이나 앞으로 상당 기간은 미국발 글로벌 금융불안이 만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일본의 장기불황기와 달리 현재는 원자재 가격의 급등과 물가 및 금리불안이라는 악조건도 겹치고 있는 점이 불안 요인을 증폭시킬 것이다.
 
세계 경제는 무극화(無極化)로 갈 것인가? 
 
1990년대에 발생한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은 세계 최대의 채권국으로 부상하여 아시아의 맹주로서 승승장구하던 일본의 국력과 외교 파워까지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술력을 가진 일본의 일부 우량 제조업체들은 아직도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으나 엔 파워는 추락하여 일본계 금융기관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 하락, UN 상임이사국 진출 실패 등 일본의 국제적인 위상은 급격히 무너졌다.
 
초고유가까지 겹쳐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의 금융 및 실물경제의 복합 부진도 미국경제력의 약화와 국제적 위상 하락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미국이 서브프라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동 산유국들이나 중국에 금융 협조를 구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미국이 1970, 80년대의 달러화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일본이나 독일의 협력을 구하면서 이들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된 것처럼 앞으로 BRICs나 중동 산유국들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되는 대신 미국의 위상은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국이 과거에 일본의 금융 지원 등을 활용하면서 글로벌 체제를 재편성하고 1990년대에는 투자은행을 중심으로 한 글로벌 달러 순환 시스템을 강화한 것처럼 앞으로 글로벌 달러 체제를 재편 또는 강화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BRICs 등은 정치 대국으로서 이미 어느 정도 파워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처럼 선선히 미국에게 협력할 지는 미지수이다.
 
또한 미국의 글로벌 전략 기획 및 대응능력 자체도 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40~50조 달러 정도로 확대되었는데도 아무런 감독이나 통제도 받지 않는 CDS(credit default swap) 등 금융파생 상품에 대한 규제 및 국제적인 감독체제 도입 문제, 글로벌 차원의 환율 협조체제 재편성 등의 과제에 대해 현재 미국은 효과적인 주도성이나 전략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 석유시장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미국의 이라크 안정화 정책도 성공하지 못하고 있으며, 미국의 국제정치적 영향력과 위신이 떨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주도 체제는 1970년대 이후 선진 7개국의 협조에 의한 다극체제로 변해왔으나 신흥국들의 급부상과 함께 고유가 및 서브프라임 쇼크로 인한 미국 경제의 쇠퇴로 인해 앞으로 다극화가 더욱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다극화 추세는 과거와 달리 글로벌한 과제에 대한 합의와 공동행동을 어렵게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7월 초 일본에서 개최된 G8 정상회담도 각종 글로벌 문제에 대해 효과적이고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내놓지 못했다. 선진국들 간에 거시경제 정책이나 환율 협조, 환경문제 공동대처 방안 등을 수립하는 것처럼 신흥국들이 선진국들과 보조를 맞추기에는 경제적인 여건 면에서 차이가 크다. 하지만 이들의 협조 없이는 글로벌 차원의 이슈 해결이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요컨대 글로벌 시스템의 주도세력이 애매해지면서 세계 경제의 리더십이 점차 약화되는 무극화(無極化) 경향을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영향력이 약해지고 있는 미국은 글로벌한 과제의 해결에 대해 점점 무관심해지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 대책에 대한 비협조적인 자세, 세계 식량위기에도 불구하고 식량을 연료로 활용하는 에탄올 정책의 고수 등 미국의 자국이기주의적인 행동이 지속되고 있다. 막대한 재정적 부담이 우려되지만 세계 석유시장의 안정화 차원에서는 미국이 쉽게 이라크에서 철군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차기 정부가 이라크에서 조기 철군을 결정할 가능성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세계 질서에 대한 힘의 공백 경향에 대해 미국 외교문제협의회의 리처드 하스 회장도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지(誌)5)에 기고한 글에서 “미국 독주 시대의 마감이 다가오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을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힘의 공백이나 무극화는 역사적으로 보면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의 대공황기의 특징적인 현상이었다는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무극화 경향으로 인해 그동안 가속되어왔던 글로벌화에 대한 반작용도 더욱 확대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극화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강대국에 의한 힘의 논리와 균형이 아니라 수많은 국가, 지방정부, 시민단체, 다국적기업 등으로 분산되는 국제적인 파워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UN 등을 통해 글로벌한 공동이익과 합리적인 이성에 기초한 문제 해결 체제가 강화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협조체제의 구축은 단기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 경제의 독주 약화와 낮아지는 신흥시장의 성장 한계점 
 
향후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글로벌 질서에 있어 무극화 방향이 심해진다고 가정할 경우 2000년대 들어 주목을 받아 왔던 BRICs를 비롯한 신흥시장들의 장기 고성장 시나리오도 재검토할 필요성이 점점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28억 명을 넘는 BRICs를 포함해서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등이 고성장을 지속하고 선진국 수준으로 발전하기에는 자원 측면에서도 제약 요인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자원 제약으로 인한 성장의 한계점을 고려하여 신흥시장의 성장 추세를 낮게 조절하지 못할 경우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이 세계 경제의 불안정화에도 불구하고 통상, 투자, 원자재 문제 등의 측면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견제를 더욱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자원 다소비형 제조업을 기반으로 고성장을 구가해 왔던 아시아 각국은 앞으로 자원 제약 시대를 맞이하여 성장 추세의 둔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 각국의 경우 중국을 포함해 인구구조가 급격히 고령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자원 제약과 함께 점차 성장세 둔화 폭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자원보유국들의 경우 교역조건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다. 사실 <그림 7>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사업 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미국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는 것은 자원보유국들이다. BRICs 중에서는 중국의 대미 수출 증가율이 둔화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 브라질, 인도 등은 상대적으로 호조를 나타내고 있다.  
 
전반적으로 제조업의 수익성을 압박하는 자원 가격 상승 효과로 인해 기업의 코스트 절감 노력이 앞으로 강화될 것으로 보여 비용이 낮은 지역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신흥국 중에서도 임금이 낮은 차세대 신흥시장이 상대적으로 유망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면 베트남 경제는 금융 측면에서 불안정성은 있으나 <그림 7>과 같이 최근에도 대미 수출이 호조를 보이고 있으며, 중국을 일부 대체하는 제조업 거점으로서 여전히 각광을 받고 있다. 일본 기업들의 경우도 유럽 시장 공략의 거점으로 활용해 왔던 동구에서 북아프리카 쪽으로 생산 거점을 이전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일본 기업들은 동구권의 임금 급등, 지중해 연합경제권의 형성 움직임 등으로 인해 북아프리카와 유럽시장을 하나로 묶어 공략할 수 있는 여건이 강화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자원이 없고 정치적으로 불안하거나 저 임금 이점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으며 외국기업 유치 정책이 불충분한 개도국들의 경우 어려움이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국가의 1인당 소득수준이 낮아 원자재 가격의 상승과 함께 식량 가격의 폭등으로 인해 정치적 불안정성이 확대하고 경제 불안이 가속화하는 위기 상황에 빠지기 쉽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세계 경제 환경은 갈수록 불투명하고 불안정해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신흥시장의 무차별적이고 낙관적인 성장에 대한 기대가 점차 무너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과거의 글로벌 경제 상식이나 기존에 인식되어 왔던 트렌드에도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기업들로서는 무엇보다도 과거의 고정 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급변하는 세계 경제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LG Business Insight 999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