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난 슐츠 회장 복귀
미국내 매장 600개 없애며 1만2000명 감원 '칼바람'
한눈 팔던 사업서 손 떼고 "커피 품질 높이자" 선언건물 안에 들어서자 향긋한 커피 냄새가 풍겨왔다. 구수하면서도 쌉쌀한 커피 향은 나무바닥이 깔린 복도에도, 차가운 쇳덩어리로 된 엘리베이터에도 깊이 배어 있었다.
직원들은 휴게실에서 커피 원두를 고른 뒤 에스프레소 머신에 넣어 직접 커피를 만들어 마셨다. 커피는 얼마든지 공짜다. 대형 화분에서는 사람 키 높이의 커피 나무가 자라는 중이었다. 하얀 꽃이 피어있는 커피 나무에는 아직 덜 익은 녹색 콩이 매달려 있었다. 휴게실 벽에는 "차별화하라. 친구가 돼라. 다른 사람을 감동시켜라"는 글이 붙어 있었다.
미국 시애틀 다운타운 인근에 자리한 이곳은 세계 최대의 커피전문점 체인 스타벅스(Starbucks) 본사다. 3000여명이 근무한다. 지난 11일 오전 10시에 방문한 이곳은 평화로운 겉모습과 달리 내부적으로는 거센 구조조정의 태풍이 불고 있었다.
"굿 모닝."
슐츠 회장은 2000년 경영 일선에서 스스로 물러났으나, 지난 1월 위기에 빠진 회사를 구하기 위해 CEO에 전격 복귀했다. 그는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 휴일도 반납한 채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지휘하고 있다.
슐츠 회장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내놓은 핵심 원칙은 간단하다. '핵심으로 돌아간다(getting back to core)'는 것이다. 스타벅스의 주 종목은 뭐니 뭐니 해도 커피다. 그는 CEO 복귀 이후 스타벅스가 제일 잘 하는 커피 사업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커피 향과 어울리지 않는 아침 메뉴를 없애고, 엔터테인먼트 사업은 손을 떼기로 했다.
그 대신 커피 품질을 향상시키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내세웠다. 본사 8층에 있는 커피 테이스팅(tasting) 룸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곳에서 일하는 데이브 위크버그(Wickberg) 매니저는 커피를 잠시 입에 머금고 맛을 음미한 뒤 곧 바닥에 놓인 통에 뱉어냈다. 그리고 노트에 간단한 메모를 했다. 마치 와인 시음을 하는 것 같은 장면이었다. 그는 하루에 300잔의 커피를 시음한다. 현재 판매 중인 커피가 맛이 변하지 않았는지 품질을 점검하고, 새로운 커피를 개발하기 위해서다.
■기본으로 돌아간다…스타벅스의 재기(再起) 전략
스타벅스는 최근 1971년 제1호 스타벅스 매장에서 팔았던 것과 똑같은 맛을 지닌 커피를 복원한 뒤 시판해 마니아들의 향수를 자극했다. 웰빙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습성에 맞춰 커피와 음료 메뉴를 유기농 재료에 저지방, 비타민, 섬유질 등을 강화하는 쪽으로 개발하고 있다.
매장 구성을 바꾸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관련 부서의 벽에는 세계 각지의 매장 사진과 그림이 어지럽게 붙어있었다. 이곳은 사진 촬영을 금지할 정도로 엄격한 보안이 지켜지고 있었다. 회사 관계자는 "새 매장 콘셉트를 3가지 정도 개발했고, 조만간 적용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싸구려 인스턴트 커피를 즐기던 시절에 스타벅스는 유럽의 카페에서나 맛볼 수 있던 고급 커피를 내놓아 세계 음료시장을 제패했다. 녹색의 스타벅스 로고가 들어있는 커피 잔은 미국 중심의 세계화를 상징하는 아이콘이 됐다.
하지만 최근 수년간 스타벅스는 고객에게 최고의 커피를 제공한다는 기본에 소홀했다. 스타벅스는 커피 외의 다른 사업에 눈을 돌렸다. 음악 CD와 영화 DVD를 직접 제작해 매장에서 판매하는 등 엔터테인먼트 사업으로 확장을 시도했다. 샌드위치 같은 아침식사 메뉴를 도입하는 등 식품사업도 확대했다. 의욕적인 시도에 비해 결과는 좋지 않았다.
오히려 고유가와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고급 커피 수요가 감소하면서 실적이 급격히 악화됐다. 스타벅스는 1992년 나스닥 상장 이후 16년 만인 올 2분기(4~6월)에는 처음으로 67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슐츠 회장은 매달 한 차례씩 회사에서 '오픈 포럼(open forum)'이란 모임을 갖고 있다. 임직원 누구나 커피와 스낵을 들고 한자리에 모여 회사 안팎의 소식을 나누고 현안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다.
최근 열린 포럼에서 그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하고, 직원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했다. 요지는 미국 내 1만1000여 스타벅스 매장 가운데 실적이 안 좋은 600개 매장을 폐쇄하며, 미국 직원의 8%인 1만2000명을 감원하겠다는 것이었다.
■아시아·남미 등 신흥 시장에서 승부 건다
스타벅스는 그동안 급속한 성장 일변도 정책을 펴왔다. 최근 2년간은 하루에 3개 꼴로 새 매장이 생겼다. 특히 미국이 심하다. 세계 1만6000여 스타벅스 매장 중 미국에만 1만1000여 곳이 집중돼 있다. 뉴욕 같은 대도시에서는 사거리 모퉁이마다 스타벅스 매장이 자리잡을 정도다.
과거에는 이웃 매장끼리 경쟁하면서 실적을 끌어올리기도 했으나, 경기 침체가 시작되자 포화상태에 이른 매장들은 서로의 매출을 갉아먹는 상황이 됐다. 지나친 대중화 전략은 희소성을 감소시켰다. 고객들은 스타벅스를 더 이상 특별하게 느끼지 않게 됐다.
그 사이에 맥도날드와 던킨 같은 패스트푸드 업체들은 매장에 에스프레소 기계를 도입하고, 커피 맛을 높이는 등 강력한 경쟁자로 떠올랐다. 이들은 상대적으로 값이 싸면서도 맛은 뒤지지 않는다. 최근 한 소비자 조사에서는 맥도날드 커피가 스타벅스보다 맛있다는 결과도 나왔다.
이 때문에 스타벅스의 구조조정은 미국 시장에 집중돼 있다. 올해 미국 내 600개의 매장을 폐쇄하기로 했고, 내년에 새로 오픈하는 매장은 60개로 제한했다. 지난해 미국에서 약 1800개의 매장을 새로 개설할 정도로 공격적인 확장 전략을 펼쳐온 것과 정반대다. 이번에 폐쇄되는 점포의 70%가 최근 3년간 개설됐다. 그만큼 무리한 확장 일로 정책의 부작용이 컸던 탓이다.
스타벅스는 또 도시와 시골 지역을 가리지 않고 실적을 분석해 매장 위치를 대거 재배치할 계획이다. 이 같은 대규모 구조조정은 1971년 회사 설립 이래 처음이다.
그렇다고 스타벅스가 성장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스타벅스는 아시아와 남미 등 신흥시장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도로시 김(Kim) 글로벌전략 담당 수석부사장은 "2009 회계연도(올 10월~내년 9월)에 세계에 900여 개의 매장을 열 계획"이라며 "지난 5월에 아르헨티나에 첫 매장을 오픈 했는데,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시장에서 거둔 성과는 정말 대단하다"고 말했다. 신세계와 스타벅스 미국 본사가 50%씩 지분을 갖고 설립한 '스타벅스커피 코리아'는 1999년 1호점을 냈다. 이후 올해까지 급속도로 성장해, 올 6월 기준으로 30개 도시에 240개 점포가 있다. 2007년 매출은 1343억원이다. 2000년의 15배에 해당한다.
그는 "중국과 인도 같은 나라에서도 한국처럼 큰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커피 시장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지만, 경쟁사보다 충성스러운 고객들이 많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22/200808220077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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